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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추의 몰락
작성자 좋은고춧가루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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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8-09-11 1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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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몰락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승인 2018.09.05 17:24

농부 철학
폭염의 뒤끝을 잡고 익어가는 고추들
폭염의 뒤끝을 잡고 익어가는 고추들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린 여름이었습니다. 가뭄까지 겹쳐 전국의 농민들이 진땀에서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특별한 경향성을 띠지 않는 기후변화여서 장단을 맞추기 어려워 허둥지둥 할 뿐, 충분한 검토를 거친 합리적인 대응방안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극심한 고온건조의 끝에 오는, 계속되는 폭우는 농민에게 저주나 다름없는 현실입니다. 매년 겪게 되는 이상 기후로 인해 작물도 농민도 근근이 살아남기에도 빠듯한 형편입니다.

워낙 사나워서 그렇지, 그래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는 법이어서 여름의 끝과 가을의 초입을 밝히는 쑥부쟁이가 피어났습니다. 연두색 밤송이가 영그는 갈색 밤송이를 품기 시작하였고, 벼 이삭도 눈에 띄게 굵어지고 있습니다. 밤이면 이별을 고하는 소쩍새의 울음의 공명이 맑고, 이따금 반딧불이가 어둠에 실금을 긋기도 합니다. 마을의 연로한 농민들도 어깨를 짓누르던 뜨거움을 겨우 식혀가면서 가을농사를 준비하면서 빈약한 소출을 꼽아보기도 합니다. 가없이 높아지는 하늘을 이고 선 마을 들녘이 그냥 그대로 풍성하기를 고대하는 농민들입니다.

 

종자마저 남의 나라에 빼앗겨, 로얄티 지급하는 청양고추
종자마저 남의 나라에 빼앗겨, 로얄티 지급하는 청양고추

 

모든 것이 익고 영그는 계절입니다만,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농작물은 고추입니다. 내내 받았던 여름 햇살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그 강렬한 붉은빛이야말로 대번에 계절의 변화를 깨우치는 지표입니다. 한 때, 저 사는 마을의 주요 농사는 단연 고추농사였습니다. 농가마다 만 주 이상의 고추를 심으며 그 규모를 서로 다툴 만큼 온 마을 밭들이 고추나무로 뒤덮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매년 9월이면 온 들이 저물녘 노을과 더불어 붉은 고추가 활활 타오르는 것은 저 사는 마을의 일대 장관이었습니다. 아내와 고추를 수확하면서 그 당시를 떠올려보지만, 이제 다시는 보지 못 할 풍경이어서 뒤끝은 씁쓸합니다.

사실, 고추농사가 지극히 왜소해진 것은 우리 마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2016년 국내 건고추 생산량은 약 8만5400톤으로 2000년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재배 면적 또한 57% 감소한 3만2179ha이었습니다. 또, 2015년 건고추 실질생산액은 7425억 원으로 2000년에 비해 49% 감소했습니다. 더구나 지난해인 2017년도에는 재배면적이 2017년에 비해 11.9% 줄었고, 생산량은 25.9% 감소했으며 총 생산량은 무려 34.8%나 급감하였습니다. 이렇듯 고추농사의 퇴조는 전국적인 현상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추의 자급률은 40%를 지키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여름을 밀어내는 쑥부쟁이꽃
여름을 밀어내는 쑥부쟁이꽃

 

고추 생산의 급격한 감소의 근본적인 이유는 FTA 등으로 인한 농산물 수입개방입니다. 2017년 8월에서 올해 7월까지 수입된 고추는 모두 12만2484톤입니다. 이중 건고추는 4135톤이고, 나머지는 냉동고추로 4만9134톤입니다. 냉동고추 수입량만으로도 2017년도 국내 건고추 생산량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처럼 냉동고추 수입량이 많은 것은 수입 건고추에는 270%의 고율 관세가 매겨지는 반면 냉동고추에는 고작 27%라는 저율 관세가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수입된 냉동고추들이 가공과정을 거쳐 고춧가루로 유통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율 관세로 인해 수입 냉동고추의 가격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국내 고추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의 심각성과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갑니다. 형편없는 품질의 고춧가루를 부지불식간에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품질의 고추는 대부분 국내 식품가공업체나 요식업체에 공급되고 있으므로 소비를 피해갈 방법도 없습니다.

고추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농민들은 재배 자체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수입개방의 여파로 소득 작물이 극히 줄어들면서 재배 기간이 짧은 단기 재배 작물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상추나 호박 등 수입 대체작목이 거의 없는 작물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올해 고추가격이 상승세이기는 하나 도매가로 1근당 가격이 1만5000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반면 성수기나 작황불량으로 인한 상추 가격은 2킬로그램 기준으로 3만원에 육박하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쥬키니호박이 10킬로그램 기준으로 6만원에 이른 적도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농민들은 작기가 길고 재배도 까다로운 고추 같은 작목을 버리고 단기작물로 농사형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실제로 단기작물은 투자비용도 적어 시세 폭락에 대응하기 편하고, 단기간에 형태를 전환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을 뿐 아니라 노동력 투입도 상대적으로 적고,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므로 선호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공판장 시세를 보면, 고추의 주산지인 영양산 상추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우리 마을의 힘, 젊은 농민들
우리 마을의 힘, 젊은 농민들

 

고추는 여전히 우리 음식문화의 근간입니다. 매년 김장을 담그는 가정이 아직도 대세인 것이 대표적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주재료인 고추가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생산년도마저 확인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입니다. 그것으로 한 가정의 건강을 뒷받침할 김장을 담그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농업계에서는 꾸준히 냉동고추 관세를 올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WTO에 발이 묶여있습니다. 하다못해 냉동고추의 용도만이라도 제한하라는 요청을 거듭하고 있으나 메아리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미 소비자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비단 냉동고추 뿐 아니라 대부분의 수입산 고추는 광범위하게 국내산과 혼합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국내산이라고 믿고 쓰는 고춧가루가 혼합고춧가루일 가능성이 큽니다. 고추자급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 개연성이 높아집니다.

기후변화로 고추농사는 매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재배과정에서 노동강도가 높은 만큼 고령화된 농촌이 버텨내기도 벅찹니다. 아시다시피 농민 대부분이 저소득층이어서 외적인 지원 없이 고추산업이 다시 부흥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립니다만, 농업은 한 국가의 건강지표입니다. 고추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식품가공업체와 외식업체가 수입산을 선호하는 한 고추산업은 다시 서지 못 할 것입니다. 가정용 소비만으로 국내산 고추가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고급고추와 일반고추를 구분하여 고추를 계획 생산함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현실성은 떨어집니다. 우리 농업의 구조적 한계와 위기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것이 고추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십여 년 전부터 토종고추를 두 세 종 재배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뜻밖에도 마을 농민 한 분이 토종 한 종자를 재배해보고 싶다고 의논을 청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왕 할 거면 적더라도 맛과 영양 등에서 차별화된 종자를 선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토종고추는 F1 종자 등 수입산에 비해 월등한 품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재배가 까다롭고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하고 선호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량 생산으로는 수입산의 파고를 넘을 수 없습니다. 불행하지만, 소량 생산으로 적정 규모의 소비자를 만족시킴으로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을 뿐입니다.

-아주 좋아요.

며칠 전 제가 그 농민에게 토종의 작황을 물었더니 저렇게 대답하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비록 꿈이겠으나 9월이면 우리 마을 온 들녘이 토종고추 익는 빛깔로 새빨갛게 물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간절히.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근우 시민기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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